고령화 속도 빨라지고 근로시간은 줄어
돌봄로봇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커질 것
기술개발 및 제품화 지원 늘려 대비해야

[전문가 포럼] '돌봄로봇'과 함께하는 세상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로봇을 의료와 복지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은 ‘수술로봇’에서 시작됐다. 소위 ‘칼잡이’라 불리는 외과의사의 인체 수술 모습은 경이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수술대에 오른 환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게임기를 다루는 듯한 모습이어서 권위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머잖아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 수술실에 있는 의사가 원격으로 정밀 수술을 집도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아직은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고가의 수술로봇은 홍보하는 것과 달리 경제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 단계의 의료용 로봇은 ‘재활로봇’이었다. 사람 손에 의존하던 재활 치료로는 성취하지 못했던 수준의 치료 효과를 보이고, 정밀한 반복 동작과 동시에 여러 동작을 수행할 수 있었다. 사고나 질병으로 온몸이 마비돼 누워 있던 환자가 로봇 보조장치를 착용하고 걷기 치료를 하는 모습은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언젠가 한 국제학회에서 스위스 재활로봇 제조사가 세계지도에 자사 제품 보급 현황을 표시해둔 적이 있다. 유엔의 정밀기기 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역에 점이 하나 찍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김정일의 뇌졸중 치료 목적으로 이 스위스제 보행 재활로봇을 북한이 비공식 경로로 수입한 것이었다. 지금은 스위스, 일본, 독일, 중국, 한국 등 여러 나라가 비슷한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에 성공했다.

그런데 국산 제품의 시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연구개발(R&D)과 제품화를 위한 지원이 이뤄지고 인허가 단계까지 넘었는데도 국민건강보험 체제 진입은 언감생심이다. 건강보험 수가가 이 제품의 원가 이하로밖에 인정되지 않은 탓에 산업화 시도가 좌절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약품에 대해선 건강보험 가격이 원가 이하로 책정된 적이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재활의료기기에서는 종종 보이는 현상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제약사에 비해 재활의료기기 제조사들의 역량이 떨어지는 셈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각광받는 시대에 잘 개발된 로봇들을 활용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재활로봇의 활용은 당장의 치료 효과도 중요하지만, 기기 안에 저절로 축적되는 치료 데이터가 합쳐져 새로운 치료기술을 개발하고 질병 회복기전을 밝히는 데 값진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재활로봇 분야는 의료 빅데이터,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 실현이 가장 쉬운 분야일 수 있다.

또 다른 폭넓은 개념의 로봇은 ‘돌봄로봇’이다. 의료와 복지에서 복지 쪽 영역이 더 큰 로봇이다. ‘케어로봇’이라고도 하는데 앞선 재활로봇과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로봇을 합친 개념으로도 쓰인다. 병원 및 요양시설에서 환자를 번쩍 들어올려 옮겨주는 환자이송 로봇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요양시설에서 배뇨·배변에 장애가 있는 환자를 위한 배뇨·배변 보조로봇, 욕창 방지 기능을 갖춘 로봇형 침대, 치매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대화도 하는 로봇 등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 요양 대상 인구가 급증하는 데 비해 노동인구 감소와 주당 근로시간 제한 등으로 돌봄로봇 수요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의료용 로봇에 비해 개발은 늦었지만 수요가 많아 시장이 빨리 형성되고 제품화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정부의 지역사회 돌봄 정책 영향으로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도 수요가 급속도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고령화 속도는 한국이 가장 빠르다. 고령화는 어쩔 수 없이 장애를 수반하고, 장애가 있다면 어느 정도 돌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노동력이 부족하고 근로시간도 줄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의도했든 안 했든 로봇이 돌보는 세상을 향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 한국에도 마이카 시대가 온다”는 소리가 아득한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돌봄로봇 시대가 온다”는 소리도 그렇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로봇이 돌보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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