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제약산업 돌파구는 ‘신약’
개발 기간·비용 크게 줄일 수 있는
첨단 AI기술 접목 체계 갖춰야”

김상은 < 미래융합협의회 회장·서울대 의대 교수 >

[시론] AI 활용 신약개발 플랫폼 서둘러 구축해야

국내 제약산업은 내수·제네릭 중심에서 세계 시장을 겨냥한 신약 연구개발체제로 전환하면서 폭풍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7년 21조7256억원으로 처음으로 20조원대를 넘었다. 연 매출 5000억원 이상 기업도 10개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제약기업은 여섯 곳에 이른다.

2006년 3500억원에 불과했던 제약기업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2017년 1조3200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상장 제약사들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도 5%에서 9%로 커졌다. 이런 R&D 투자와 체질 개선으로 1999년 국산신약 1호가 탄생한 뒤 지난해까지 30호 신약이 개발됐다. 2013년 이후 국내 개발 의약품 11개 품목이 미국·유럽연합 인허가를 받아 선진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의약품 수출은 2006년 8700억원에서 2017년 4조6000억원으로 급증했고 기술수출 계약도 지난해 4조7500억원에 달했다.

제약산업은 이런 괄목할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 지금은 저성장 위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1년 1조5000억달러로 2014년(1조달러)에 비해 50%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성장률은 9%에서 6%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신약 허가 건당 연구개발 비용이 평균 26억달러로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높아지고 전통적인 신약개발 방식으로는 성공률과 소요기간(10~15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은 미래 제약산업을 이끌 돌파구 중 하나다. AI 기술을 이용하면 신약 후보물질 발굴, 약물 용도변경, 독성 예측, 임상시험 설계 및 최적화, 의약품 인허가, 의약품 부작용 모니터링 등 신약 개발 과정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신약개발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개발을 계속할지, 중단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일본제약공업협회는 AI 본격 도입 시 신약개발 건당 소요 시간과 비용이 각각 10년에서 3~4년, 1200억엔에서 600억엔으로 절반 이상 줄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제약기업들은 AI 기업과 협업해 신약후보물질 평가 및 발굴, 신약 표적 발굴 등에 나서고 있다. 각국 정부는 ATOM 컨소시엄(미국), 라이프 인텔리전스 컨소시엄(일본) 등 산학연(産學硏) 협력체를 지원해 신약개발을 위한 AI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AI 활용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사업(과학기술정보통신부·보건복지부), 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사업(산업통상자원부), AI 신약개발지원센터 설립(제약바이오협회·보건산업진흥원) 등 AI 신약개발 활용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의약품 시장은 글로벌 시장의 2% 미만으로 매우 작다. R&D 투자도 글로벌 투자액의 1% 미만이다. 국내 제약기업 대부분은 막대한 개발 비용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높은 전통적 신약개발 방식을 감당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 혁신 신약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내수시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적 신약개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AI는 신약개발 후발 주자인 한국이 제약산업 강소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바이오 인력·기술, 의료정보시스템 등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의료기관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은 92%로 세계 1위 수준이다. 질 좋은 보건의료 데이터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적, 기술적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신약개발 AI 인프라 구축과 보건의료 데이터의 개방성·접근성 강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개방형 혁신’으로 신약개발 혁신을 일으켜 제약산업 강소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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