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AR·장비와 표준특허 등 경쟁력 열세
규제 혁파해 콘텐츠·서비스 생태계 키워야

5세대(5G) 통신 시대가 열렸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지난 3일 밤 11시 세계 최초로 1호 가입자의 5G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5일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통을 시작했다. 현재의 4G 대비 최대 20배 빠른 ‘꿈의 통신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당초 상용화 시점은 5일 0시였다. 하지만 미국 버라이즌이 선수를 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를 소집해 부랴부랴 일정을 앞당겼다. 우여곡절 끝에 55분 차이로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정부가 심야개통 소동까지 벌여가며 ‘최초 타이틀’에 집착한 것은 그 상징성과 경제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5G는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3대 특징인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을 무기로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스마트시티 등의 서비스를 가속화할 것이다. 인류 삶과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인프라로 평가받는다. ‘4차 산업혁명의 혈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스타트(최초)는 먼저 끊었지만 결승선(최고)까지 갈 길은 멀다. 우리나라가 지닌 경쟁력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반도체 기술과 통신 3사의 네트워크 운용 능력 정도에 불과하다. 5G 핵심 콘텐츠인 가상현실(VR)·증강현실(AR)·AI 기술은 미국과 일본에 뒤진다. 장비 시장은 유럽의 에릭슨·노키아와 중국 화웨이가 주도하고 있다. 경쟁력의 척도인 5G 표준 특허도 중국 기업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5G 생태계를 활짝 꽃피우기 위해선 혁신적인 콘텐츠와 서비스가 많이 나와야 한다. 다른 산업과의 융합은 필수다. 하지만 정부의 행보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빅데이터산업은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가로막혀 있고, 요금 인가제 등 통신정책은 2G 시대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국내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심야개통 해프닝도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원래 통신사들은 3월 말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부가 SK텔레콤 요금제가 비싸다고 퇴짜를 놔 일정이 지연됐다. 시장을 무시한 정부의 가격 개입 때문에 하마터면 ‘세계 최초’ 타이틀을 빼앗길 뻔했다.

우리나라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를 비롯해 3G, 4G, 와이브로 등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하지만 세계를 호령할 서비스는 내놓지 못하고, 구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에 판만 깔아주고 말았다.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 노력이 없다면 우리나라가 5G 인프라 강국은 될지 몰라도, 막대한 부가가치의 보고(寶庫)인 서비스 시장에서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